IIPRETTY STAR03 / 15
PRETTY STAR
PRETTY STAR : 3
[SCENE START]
··· ···.
아니스는 자신의 책상을 빤히 바라보았다.
온갖 낙서가 쓰여 있다. 차마 읽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낙서들이다.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닦아본다. 닦이지 않는다.
···유성이네.
아니스는 교실을 둘러본다.
모두가 자기들 할 일을 하고 있다. 잡담하거나, 자거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보거나.
하지만 아니스는 그 모든 사람의 신경이 자신을 향해 쏠려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거 누가 이랬냐?
응?
아무런 반응이 없다. 마치 없는 사람 취급이다.
이거! 누가 이랬냐고!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아니스는 성큼성큼 걸어가, 수다를 떨고 있는 여학생에게 다가간다.
여학생은 필사적으로 아니스를 무시하고 있었지만, 아니스는 여학생의 얼굴 앞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얘기 중에 미안한데, 내 책상 누가 저랬는지 알아?
모, 모르겠는데. 라는 뻔한 대답이 들려온다. 아니스는 여학생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네가 그랬어?
격렬하게 아니라고 부정하는 여학생을 보고 아니스는 미간을 찌푸린다.
고개를 들고 반 전체를 향해 소리친다.
누가 이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이유나 좀 알자! 엉!?
왜 이러는 건데?
뭔 이유라도 알려주고 괴롭혀야 할 것 아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는 교실.
···하. 진짜. 짜증 나네.
하루이틀도 아니고 진짜.
아니스가 책상에 앉아 물티슈를 꺼낸다.
힘을 줘서 빡빡 문지른다. 다행히 조금씩 지워진다.
그 중, 붉은색 글자는 쉽게 지워진다.
아니스는 물티슈에 묻은 붉은색을 빤히 바라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 소녀의 뒷 목덜미를 꽈악 잡는다.
아, 아으···!
야 반장. 반의 모범이 되어야 할 인간이 왜 이딴 짓을 한 건지 들어나 보자. 하루이틀도 아니고 응?
나, 나 아니야···!
너 얼마 전에 립스틱 샀다고 자랑을 자랑을 그렇게 했잖아.
색 예쁘더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비싸다더니, 그걸로 용케 낙서를 했네? 너희 집 돈 많아?
꽈아악-
나, 나 혼자서 한 거 아니···!
너도 한 거 맞잖아! 반을 대표하는 반장이니까, 네가 대표로 맞아라 그럼!
이··· 이익···!
반장이 아니스를 뿌리친다. 목 뒷덜미를 주무르며 아니스를 노려본다.
이래서라고···!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잘난 듯이 까불어대서 그런 거라고!
뭔 개소리야.
너 부모도 없다며! 고아라며!
여기도 지원금 받아서 들어온 거라며!
진짜 아무것도 없는 게 뭘 맨날 그렇게 잘난 듯이 대장질을 하는건데!
대장은 나라고! 내가 반장이라고! 네가 아니라!
··· ···.
아··· 그럼.
잘난 집안에서 태어난 네가 반장인데.
부모도 없고, 지원금 받아서 먹고사는 내가 네 자리를 위협하니까.
그게 싫어서 이러는 거라고?
제발! 주제에 좀 맞게 살아!
진짜···! 맞춰주니까 다 자기 좋아하는 줄 알고···!
드르륵-
교실 앞문이 열리며 교사가 들어온다.
···너희들 뭐 하니?
··· ···.
···아무것도 아니에요.
앉아. 수업하게.
반장은 교사의 눈치를 본 다음 자리에 앉는다.
교사는 아니스를 쳐다보다가 교탁을 향해 걸어간다.
아니스는 반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내 얘기 아직 안 끝났다고 인마--!!
으악! 선생님! 선생님!!
몇 번째니 이게.
몰라요. 기억 안 나는데요.
자꾸 문제 일으키지 마.
걔들이 먼저 시작했다고요. 저는 아무것도 안 했고.
그래. 쟤들이 잘했다는 얘기가 아니야.
그런데 계속 그러는 건 이유가 있지 않을까?
너를 한 번 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거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세요?
뭐라고?
아 죄송. 그걸 지금에서야 말해줘서 아쉽다는 말이었어요. 말이 헛나왔네 하하.
근데요 선생님. 아무리 저를 돌아봐도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요.
음··· 너 얼마전 체육 대회에서 응원 단장 했었지?
예.
네가 한다고 했어?
예.
왜?
그야 제가 제일 잘 하고, 안무랑 동선도 잘 짜니까요. 리더십도 있고, 성격도 괜찮고.
다른 애들은 다 동의했고?
그러니까 단장을 했겠죠.
왜 반장한테 양보하지 않았어?
··· ···.
알겠지만, 아니스. 반장은···.
예. 이 학교에 돈을 갖다 바치는 부모를 뒀죠. 멍청하고 이기적이지만.
음. 잘 아네.
그럼 이제 이유가 나온 거 같네. 그렇지?
애한테 방주 사회의 더러움을 너무 직설적으로 알려주는 거 아닌가요?
이런 게 방주에 와서 새로 생긴 것 같니? 역사와 전통이 있는 문화 같은 거야.
···흐음···.
그래. 아니스. 여기까지 얘기가 나온 이상 솔직히 물어볼게.
방주에서 태어나자마자 버려져서, 시설을 전전하다가.
이사장이 신문 한 면 장식용으로 쓰기 위해 선심 쓰듯 뿌린 취약 계층 특별 입학에 운 좋게 걸린 네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높은 수준의 공짜 숙소, 공짜 식당, 공짜 교육을 누리고 있는데.
왜 그걸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내놓으라는 거야?
와, 선생님. 교사가 학생한테 막말 굉장하시네요. 이래도 돼요?
그 질문에도 솔직하게 대답하자면, 너한테는 이래도 돼.
··· ···.
그래서, 대답은?
솔직하게 대답해야 돼요?
나도 솔직히 얘기했잖니.
··· ···.
···사람들이 나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그런 거 경험해 본 적이 없었는데 여기 학교에 와서는, 어 눈물난다 아이씨.
자, 닦아.
학교에 오니까, 아이들이 말도 걸어주고 같이 뭐 하기도 하고.
그게 너무 좋아서 더 잘 지내고 싶고, 더 잘 지내고 싶으니까 노력하고.
내가 노력하고 잘하는 만큼 사람들이 나 좋아해 주면 좋겠고 그래요.
외롭니.
안 그랬던 적 없는데요.
학교를 그만두는 건 어떻겠니?
진짜 막말 너무 하시네.
너, 여기서는 반장 등쌀에 밀려서 네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없을 거야.
아르바이트를 포함한 외부 활동도 전면 금지라서, 계속 여기 있어야 해.
그럴 바엔 그만두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너는 잘 살고 있어. 노력하고, 쟁취하려고 하고 있으니까. 솔직히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해.
그런데 여기서는 안 돼. 너는 철저히 짓밟힐 것이고, 네 노력은 아무런 가치가 없어질 거야.
학창 시절의 기억은 네 앞으로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겠지.
그러니 그만둬. 전학은··· 힘들겠네. 특별 입학이라.
그래도 너 사회 어디 던져놔도 잘할 테니까.
선생님이 좀 도와주면 안 돼요?
안돼. 알잖아. 나는 돈 벌어야 하고, 돈은 이사장이 주니까.
··· ···.
잘 생각해 보고, 이제 그만 교실로 돌아가.
선생님.
안 돼.
미안하다.
··· ···.
그래도, 미안하다고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 ···.
아니스가 교무실을 나선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수업이 한창이다.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교사도, 학생도 아니스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스는 더욱 엉망이 된 자기 책상에 가서 앉는다.
잠시 후, 책상에 엎드린다. 잠은 자지 않는다.
수업은 계속 진행된다. 하교를 알리는 방송이 나온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스는 엎드린 채 일어나지 않는다.
교실이 조용해지고, 시간이 흐른다.
한참 후, 아니스는 책상에서 몸을 일으킨다.
어두운 교실. 아무도 없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가방을 챙겨 기숙사로 향한다.
룸메이트의 짐이 모두 빠져있다. 아니스는 침대에 눕는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그 중, 아니스를 위한 소리는 단 하나도 없었다.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한다.
시설의 관리자에게 썼던 감사의 편지가 뜯기지도 않은 채 쓰레기통에 있었던 기억.
예쁜 옷을 입은 또래에게 같이 놀자고 얘기했다가 그 부모에게 뺨을 맞고, 물세례를 받았던 기억.
친구가 되었던 아이가 먼저 입양되어 떠났던 기억.
몇 년 후 우연히 만나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가, 되돌려받은 난처해하는 웃음을 봤던 기억.
관심을 받고 싶어 무대에 올라가 막춤을 췄던 기억. 그때 들었던 모두의 웃음이 너무 좋았던 기억.
그 웃음이, 비웃음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며칠을 울었던 기억.
두 번째 시설을 떠날 때, 잘 지내라고 울며 안아주던 자원봉사자의 따뜻한 품에 대한 기억.
그걸 잊지 못해 수소문해 찾아갔지만, 싸늘한 디지털 묘비를 봤던 기억.
그녀의 딸을 찾아가, 안아달라고 한참을 떼를 썼던 기억.
그 시점에, 아니스는 확신했다.
나는 분명 너무나 사랑을 갈구해서, 어딘가 망가져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아니스는 감고 있던 눈을 뜬다.
입학하던 날, 반가워하며 다가와 줬던 기억.
주눅이 들어 있던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줬던 기억.
같이 밥을 먹고, 같이 하교하며 수다를 떨었던 기억.
응원 단장을 맡겠다고 했을 때 받았던 모두의 기대감 가득한 시선에 대한 기억.
웃고 떠들며 연습했던 기억. 훌륭히 해냈을 때의 기억.
모두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을 때의 기억.
그 시점에, 아니스는 또다시 확신했다.
나는 망가지지 않았고, 나는 내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그래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나를 좋아할 수 있었던, 반년도 채 되지 않았던 그때를.
아니스는 다시 눈을 감는다.
괜찮아.
다시 돌아갈 수 있어. 응.
다음 날.
아니스는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안녕~ 좋은 아침.
아무런 대답도, 시선도 없다.
교문 앞에 공사 끝났던데, 엄청 예쁘더라.
아무런 대답도, 시선도 없다.
···오늘, 점심 뭔지 아는 사람?
아무런 대답도, 시선도 없다.
··· ···그, 숙제 다 해 왔는데 나랑 답 한 번 맞춰볼···.
아무런 대답도, 시선도 없다.
··· ···.
아니스는 자기 책상으로 향한다.
책상은 여전히 엉망이다.
그리고 책상 위의 작은 꽃병에, 국화 한 송이가 꽃혀있다.
··· ···.
아니스는 당장에 꽃병을 들고 반장의 머리를 깨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니스는 그 충동을 실행에 옮기기보단, 항복을 택했다.
아니스는 꽃병을 책상 한구석에 치워놓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 예습을 시작했다.
눈앞이 뿌예지고 콧등이 시큰거리지만 필사적으로 참았다.
그리고 아니스는 그날, 기숙사로 돌아가 잠을 자기 전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SCEN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