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hapter.48: 재탄04 / 08
Chapter.48: 재탄
딱 하루만 더 붉기를
[SCENE START]
··· ···.
··· ···.
정신을 차린 모양이군요.
···어떻게.
··· ···.
장화가 떨리는 팔을 들어 홍련의 브레인 셸터를 가리킨다.
···노력하고 있어요.
손상이 너무 심해서 쉽지 않은 상태죠.
장화의 팔이 방향을 바꾼다.
뚝. 뚜둑. 끔찍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 ···.
다 듣고 있었군요.
··· ···.
··· ···.
이론상으로는, 예. 그렇게 하는 게 맞아요.
당신의 바디를 홍련에게 주는 게, 현 상황에서는 가능성이 가장 높겠죠.
하지만···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누군가를 죽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알아주면 좋겠어요.
··· ···.
뚜둑. 뚝. 장화의 팔이 끔찍한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부러진 검을 꺼내들고
자신의 머리를 찌른다.
···!!
장화가 쓰러지고 세실이 달려간다.
세실은 장화의 상태를 확인한다.
정확하게 찔렀다.
이건 살릴 수 없다.
당신···!
세실은 장화의 몸에서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그 모습을 잠시 동안 바라본 후, 벌떡 일어난다.
···예.
맡겨줘요.
고마워요.
··· ···.
묘한 장소로군.
홍련이 고개를 숙인다. 아래에 술병과 술잔이 놓여있다.
술잔이 두개라.
손님이 오는겐가. 아니면, 내가 초대받았거나.
홍련이 고개를 든다. 장화가 보인다.
안녕. 련아.
··· ···.
오랜만일세. 언니.
음. 예뻐졌네?
언니는 예전 그대로군.
앉자. 시간이 얼마 없어.
유능하면서도 상냥한 누군가가, 나한테 시간을 좀 준 모양이니까.
그런가.
홍련과 장화가 마주앉는다.
장화가 말없이 술잔을 채우고, 둘은 잔을 부딪힌다.
한모금 마신 둘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본다.
··· ···.
··· ···.
이것 참. 호화로운 꿈이로군.
그러게. 분에 넘칠 정도야.
첨벙. 첨벙. 첨벙.
고요한 수면이 솟아오른다.
검은 옷을 걸친 검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홍련은 그리운 얼굴들을 바라보고, 활짝 웃었다.
아아··· 자네들도 왔는가.
어서 이리들 와서 앉게. 함께 마시지.
련아. 검을 들어.
검? 갑자기 무슨 소린가.
저것들은 우리 동료가 아니야.
우릴 꼭두각시로 만들기 위해 온 것들이지.
흐음···?
그 녀석은 이런 걸 좋아하거든. 기억을 끄집어내서 굴복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그 녀석?
있어. 직접 나서지는 않는 주제에 남이 망가지는 걸 지켜보기 좋아하는 음침한 녀석.
어딜 가나 그런 것들은 있기 마련이지.
저것들에게 패배하는 순간, NIMPH가 망가져서 꼭두각시가 되는 거야.
자기 꼭두각시가 빼앗기는 건 또 싫어서, 내 몸 곳곳에 있는 블랙박스에 저런 걸 심어 놓은 거지.
경험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군.
응. 당했었으니까.
호오. 언니가?
저들은 강한가?
별로. 근데 못 베게 만들어.
나한테는 련이 네가 나왔었거든.
가짜인 줄은 당연히 알았는데, 차마 못 베겠더라.
···너한테 상처를 준 기억밖에 없어서 그런지, 벨 수 없었어.
··· ···.
언니는 나에게 강해지라 말해주었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게.
나는 그것을 삶의 지표삼아 살아왔고
내 검의 주인은 나임을 자각했네.
그 누구도 나를 휘두를 수 없네.
자유롭게, 나 스스로 판단하며 살아왔네.
그러니 상처를 줬다 말하지 말게.
··· ···.
그럼, 저것들을 모조리 베면 되는 건가.
응. 당연히 진짜가 아니니 망설이지 말고.
언니와 내가.
힘을 합쳐.
저것들을 베는 건가?
···응.
허, 허허.
··· ···.
이것 참. 정말 호화롭다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의 꿈이로군.
자매가 달린다.
검을 휘두르며, 적들을 베어낸다.
적의 공격을 받아낼 땐 흐르는 물처럼.
적에게 공격을 퍼부을 땐 질주하는 번개처럼.
움직임은 바람에 몸을 맡긴 꽃잎처럼.
자매는 마치 처음부터 한몸이었던 것 마냥, 완벽한 호흡을 맞춘다.
적의 공격이 거세진다. 사방에서 공격해오는 검의 파도와 같다.
자매는 서로 등을 맞댄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정면만을 바라본다.
서로의 등 뒤에는 최고의 검사가 있으니
둘은 그저 눈앞의 적만을 베어내면 그만인 일이다.
베고, 베고, 베어낸다.
수면이 난폭하게 흔들린다.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간혹, 즐거움을 주체하지 못 하는 자매의 웃음 섞인 호흡이 들려온다.
그리고 이윽고.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수면은 잔잔해진다.
자매는 서로를 바라본다.
활짝, 조금의 구김도 없는 웃음을 짓는다.
나무에 흐드러지게 핀 꽃잎이 떨어진다.
우수수. 모든것을 털어내듯 떨어진다.
언니는 천천히 다가가
사랑스러운 동생을 끌어안는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
나는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너무 싫었어.
너무 쪼잔하다고 생각했지.
고작 열흘이라니, 너무하잖아.
하루 정도는, 더 붉어도 괜찮을 텐데.
··· ···.
나의 열흘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고, 나는 시들었어.
그런데 딱 하루. 더 붉을 수 있었네.
그게 오늘이고.
···가는겐가.
응. 이제 가야지.
안녕 련아. 내 사랑하는 꽃같은 동생.
내가 너한테 거는 마지막 주박이야.
행복하게 살아.
장화의 몸이 붉은 꽃잎이 되어 사라진다.
홍련은 장화를 더욱 세게 끌어안는다.
약조하겠네.
나는 반드시 행복하게 살겠네.
붉은 꽃잎만이 고요히 흩날린다.
마지막 남은 붉은 꽃잎이 수면에 내려앉는다.
작은 파문과 함께.
홍련은 눈을 뜬다.
[SCEN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