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hapter.48: 재탄05 / 08
Chapter.48: 재탄
오랜 기억
[SCENE START]
검은 공간의 한 구석이 요란스럽다.
소녀와 마리안은 궤도 엘리베이터에서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다.
레비아탄이 인근의 다크 매터들의 제어권을 겨우 빼앗아 거대한 벽을 만들어 파도를 막아낸다.
하지만 곧 한계에 다다른다. 벽이 무너지기 직전, 지즈가 모두를 감싸 하늘로 솟아오른다.
리버렐리오 바디가 촉수에서 고압고속의 물줄기를 쏟아내 지즈를 떨어뜨린다.
바닥에 쓰러진 일행이 추스릴 틈도 주지 않은 채, 리버렐리오 바디는 촉수에서 물줄기를 쏘아댄다.
아득한 높이. 아득한 크기.
리버렐리오 바디는 공격을 피하지 않는다.
오만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줄기를 쏘아낼 뿐이다.
그저 크고, 단단하고, 강하다.
순수한 스펙 자체가 터무니없이 높다.
별다른 특수 능력은 없다. 정확히는 사용할 수 없다.
바디의 기능을 끌어내고 활용할 머리가 없다.
그렇기에 그저 공격만을 퍼부을 뿐이다.
두 번째로 만들어진 헬레틱.
우연에 가깝게 만들어진 첫 번째 헬레틱 아나키오르와는 달리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성심성의껏, 전력을 다해 만들어진 두번째 헬레틱.
그 압도적인 힘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앨트루이아와 에고비스타는 멀찌감치,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 ···.
···지휘관. 모두···.
결정했어.
저기로 갈래.
···?
언니들은 약해.
나는 강해.
가서 하늘에서 온 그것을 죽이고, 인자를 빼앗아 퀸이 될래.
응. 그렇게 정했어.
···왜요?
언니들을 구해야 하니까.
··· ···.
··· ···.
···퀸이
되고 싶나요?
···아니. 싫어.
그런데 해야 해.
그것이 퀸이 되어서는 안돼.
그때 싸우면서 알게됐어.
그것이 원하는 건 단 하나야.
자기가 만들어낸 것 이외에는 다 죽이는거야.
언니들을··· 다 죽일거야.
그리고 다시 시작하려 해.
···그건 싫어. 그러니 내가 해야 해. 내가 퀸이 되어야 해.
뭘 원하나요.
언니들이 살아있는 세상.
아뇨. 그거 말고요.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가 아니라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줘요.
··· ···.
나는 언니들이랑 같이 살고 싶어.
아빠랑 엄마랑 같이 지내고 싶어.
품에 안겨 자고, 온갖 곳을 돌아다니고 싶어.
매일 웃고, 재미있고 싶어.
···당신은, 사랑받고 있군요.
··· ···.
응.
나 안아줬어.
많이 많이 안아줬어.
퀸이 되고 난 뒤에는··· 못 하는 건가요?
언니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퀸은 일곱의 조율자와 함께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해.
그게 퀸이 해야 할 일이야.
그 외엔 무엇도 할 수 없어.
···그래서, 안아달라고 할 수 없어.
놀러 갈 수도 없어. 웃지도 못해.
외로울 거야.
··· ···.
그래도 해야 해.
그것을 이길 수 있는 건 나 뿐이야.
내가 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그것에게 넘겨주게 될 테니까.
··· ···.
마리안이 천천히 소녀에게 다가간다.
소녀의 공허해 보이는 눈 안에 담긴 감정을 본다.
마리안은 조용히, 소녀를 끌어안았다.
···퀸이라는 존재가, 당신을 짓누르고 있군요.
응.
당신은 그냥 뛰어놀고 안기는 걸 좋아하는 아이일 뿐인데.
응.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 모든 걸 포기하려 하는군요.
응.
그래도 괜찮아.
언니들이
나 많이 사랑해줬거든.
그래서 괜찮아. 언니들을 위해 퀸이 될 수 있어.
··· ···.
마리안이 소녀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는다.
소녀는 눈을 감고 그 기분 좋은 힘에 몸을 맡긴다.
언니도 좋은 사람.
다 좋은 사람.
···하지만 약한 사람.
그래서 나는 퀸이 되어야 해.
두근.
두개의 고동.
편안해지는 냄새.
마리안은 소녀에게서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두개의 고동과 냄새를 느낀다.
···아.
이 느낌은···.
···라피.
그리고 지휘관···?
응. 아빠랑 엄마.
···예?
아빠랑 엄마야.
그렇··· 군요?
마리안은 눈을 감는다.
그리운 그 감각에 온 몸을 맡긴다.
따스하고 그리운 감각.
더 쎄게 안아줘.
아빠가 언니 많이 좋아하나 봐.
마리안은 더욱 강하게 소녀를 끌어안는다.
마리안은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모든 것이 녹아드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마리안은 그 감각 안으로, 모든 것을 내던졌다.
언니. 머리가 빛나.
마리안의 붕대가 빛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 싫어요. 안 들을래요.
안 할래요. 나 그거 안 할래요.
지휘관이랑 같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버리지 마세요···. 제발 버리지 마세요···.
저는 같이 있고 싶단 말이에요.
···쏘실 건가요? 저를?
후후. 저는 지휘관을 잘 알아요. 지휘관은 저를 쏘지 못해요.
그때도 쏘지 못하셨잖아요.
따뜻한 사람이니까. 상냥한 사람이니까.
여기··· 예요.
지휘··· 관.
붕대··· 고마웠어··· 요···.
걱정 마세요.
저는 당신을 지키니까요.
지휘관. 이쪽에도 붕대를 감아주세요.
BA-01다운! BA-01다운!
응답해 주세요! 추, 추락했다고요!
지휘관?
그런 걸 왜 하려고 해?
박봉에, 위험하기만 하다고 그랬는데.
··· ···.
그래도 응원할게. 그 꿈.
혹시.
혹시 말이야.
내가 니케가 된다면.
네가 내 지휘관이 되면 좋겠네.
넌 이름이 뭐야?
지휘관? 하하. 이상한 이름이네.
아. 내 소개를 안 했구나.
내 이름은···.
···언니.
울어?
아···.
아아아아···.
그래. 나는.
그 사람이 죽지 않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그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그 사람이 웃을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그 긴 시간을-
영원할 것만 같았던 굴레를-
그렇기에 나는.
모두가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세계를.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세계를.
사랑으로 가득한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
부탁이 있어요.
뭔데?
나에게 당신의 인자를 줘요.
···언니한테?
예.
안 돼. 언니는 약한걸.
저는 약해요.
하지만 이젠 아니에요.
제가 해야 할 일.
아니,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았어요.
예. 이제 완전히 알아요.
그러니까 저는 이제 약하지 않아요.
저는 이길 수 있어요.
소녀가 마리안을 살짝 밀어내고 뒷걸음친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마리안을 바라본다.
손가락을 꼼지락댄다.
··· ···.
정말 그래도 돼?
예.
소녀가 손가락을 더욱 꼼지락댄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강하게 가로젓는다.
언니들은 약해.
그것의 부하조차 이기지 못 하는걸.
아뇨. 잘 봐요.
저들은 절대 지지 않아요.
승리의 여신들이니까.
[SCEN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