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hapter.34: 계승04 / 15
Chapter.34: 계승
아득히 멀기에
[SCENE START]
···지휘관의 말 그대로입니다.
저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아니··· 애초부터 없었으니 계속 그대로라고 하는 게 맞겠군요.
저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목적도, 이상도, 사명도, 꿈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정말 운 좋게도.
레드 후드라는 영웅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되고 싶었습니다.
계승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레드 후드의 마지막을 지켜본 제가 할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예. 운명··· 같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저는 레드 후드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저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기술은 물론.
그 숭고한 사명까지도.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저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아챌 때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걸 포기했습니다.
애초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제가, 가득 차 있던 레드 후드를 계승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습니다.
이상향은··· 아득히 멀기 때문에 이상향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레드 후드를 이어받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 ···.
저한테는 다시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뭘 위해 살아야 할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헤매던 중, 지휘관을 만났습니다.
그 올곧은 눈, 똑바로 걷는 걸음걸이가 눈 부셔 보였죠.
그 옆을 함께 걷는다면,
옆에서 같은 것을 바라보고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면
아무것도 없던 나에게도
뭔가가 생겨나지 않을까.
저는 지휘관을 지켜야 했습니다.
포기하고 있던 저에게 다시 찾아온··· 행운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유일하게 남은, 레드 후드에게 이어받은 힘으로 지휘관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것 말고는 없었습니다.
저한테 있던 조금의 인연에 미련이 남아, 레드 후드를 떠나보낸.
이기적인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강해야 했습니다.
싸우는 것 말고는, 저에게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계속 이겨야 했습니다.
패배하면 안 됐습니다.
하지만 패배했습니다. 베히모스에게.
그럼 이제 저에게 남은 것이 무엇일까요.
싸우는 것 밖에 남지 않은 제가, 싸우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면.
저한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증명했어야 했습니다.
베히모스든, 레비아탄이든, 제 손으로 쓰러뜨려야 했습니다.
그래야.
그래야 저는.
그것만이라도 남아있는··· 뭔가가 될 테니까요.
지휘관의 옆을··· 함께 걸을 수 있을 테니까요.
선택지
··· ···.
··· ···.
선택지
예. 지휘관이라면 그렇게 말씀하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더 강해지면 된다. 다시 기회가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레이브와 신데렐라 때문에, 조바심이 생겼습니다.
···그 둘이랑 너랑 무슨 상관인데.
··· ···.
그레이브는.
그 긴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았어.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계속 걸어왔어.
···자신의 이상향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그리고··· 그걸 이뤄냈어.
나와는 다르게.
···열등감이··· 생긴 거야?
···응.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그레이브보다 내가 부족한 것은 없었을 거야.
환경도, 상황도.
그런데 나는 포기했고, 그레이브는 이어갔어.
그 결과는, 지금 보이는 대로고.
··· ···.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
주제에 맞지 않는 이상향을 꿈꾸다,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면서 그만둬버리고.
내 멋대로 합리화한 채 포기하고 있던 것을 남이 이루어내자 시기하고 질투하고.
그제야 다시, 허둥지둥 쫓아가려고 하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
··· ···.
민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지휘관.
앱솔루트와 그레이브, 신데렐라가 주력으로 활약할 수 있도록.
저는 백업으로 빠지겠습니다.
선택지
선택지
···하지만 저는···.
선택지
응.
예. 스승님.
선택지
물론이야.
앗, 그런데 제가 잡아버리면 어떡하죠?
아니, 아닙니다. 계속 민폐를 끼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보셨을 겁니다. 저는 이길 수 없습니다.
선택지
!!
욕심나지?
이기고 싶잖아요.
··· ···.
이기고 싶어.
그래.
이길 수 있게 만들어줄게.
아직 네가 뭘 하고 싶은지 결정하지 못했잖아.
그걸 결정하기 위해서 너는 져서는 안 되는 거고.
그러니 무조건 이기게 해 줄게.
예. 반드시요.
··· ···.
선택지
선택지
선택지
···지휘관.
선택지
선택지
선택지
선택지
··· ···.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근데 우리 이런 얘기 거의 처음인 것 아냐?
그러게요. 실없는 소리나 주고받지 진지한 얘기는 잘 안 하죠.
···그 원인에 네가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 같지만.
··· ···.
그렇네.
휙휙 바뀌는 상황에 적응하기에만 바빴지, 각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는 관심 없었던 것 같아.
되게 웃기다. 우리 죽을 고비도 여러 번 같이 넘겼는데.
그럼 아예 하루에 한 번씩 진지한 얘기 타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또 그렇게 멍석이 깔리면 잘 안 하게 되는 게 사람이라서.
··· ···.
아··· 아니다.
??
내가 아무런 생각이 없었으니까. 할 말도 없었던 거야.
···하하. 그래.
···그냥 부표구나. 나.
[SCEN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