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hapter.45: 죗값10 / 11
Chapter.45: 죗값
죄지은 자들
[SCENE START]
아우터 림. 격벽 인근.
···정말이야?
그렇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식스오 전에서 아우터 림이 보여준 행동 때문입니다.
통칭 펑크 스트리트에 E2 크리스탈을 이용한 테러가 발생했을 시, 아우터 림으로 피난한 방주 시민에게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는 점.
또한, 방주 시민들을 위해 아우터 림의 물자를 나눠준 점.
아우터 림에 산재해 있던 미스트 생산 시설을 남김없이 파괴한 점.
아우터 림에 있던 식스오의 메인 하드웨어를 파괴한 점.
방주 정전 당시, 아우터 림의 격벽을 지나 방주로 넘어온 인간이 한 명도 없다는 점.
엔드리스, 이터니티를 퇴각시켰음에도 방주를 향한 테러 시도가 없었다는 점.
이 모든 요소를 종합하여 내린 결론.
[식스오 전에서 아우터 림의 협조가 없었다면 더욱 큰 사태로 번질 수도 있었다.]
[현재의 아우터 림은 방주에 위해를 끼칠 의도가 없다.]
이에 따라, 아우터 림의 위험도를 하향 조정합니다.
··· ···.
엔드리스와 이터니티는 아우터 림에서 철수할 것이며.
이그조틱 스쿼드의 방주 입장 절차가 간략화됩니다.
또한 방주 수뇌부와의 정기적인 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방주 수뇌부의 대표는 본인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엘리시온의 CEO 잉그리드로 결정되었습니다.
아우터 림의 대표는 통칭 E.H.인 당신으로 괜찮습니까?
어, 어. 물론이야. 괜찮, 괜찮아.
알겠습니다.
또한 식스오가 소멸하며 블랙 넷이 주인을 잃었습니다.
폐쇄를 고민했으나, 아우터 림의 인간들 대부분이 블랙 넷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음을 확인.
제가 블랙 넷을 장악해 운용할 예정입니다.
위험한 물품은 거래하지 않을 예정이니, 그 점을 제대로 전파해 주십시오.
알겠어. 이제 우리한텐 필요 없는 물건들이기도 할 테니, 걱정마.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그래. 잘 부탁해.
삣-
··· ···.
···말도 안 돼.
그럼 그럼, 우리 이제 방주로 나갈 수 있는 거야?
응. 절차가 필요하긴 하겠지만, 지금처럼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야♡
헤헤! 나 아우터 림 좋아하는데, 방주도 좋아!
맛있는 것도 많고, 달리고 있으면 A.C.P.U.가 쫓아와서 재밌어!
그렇게 싫어하더니, 이제 재밌어졌어?
응! 매일 똑같은 건 재미없어!
그래그래. 열심히 해서 절차 같은 거 필요 없게 만들자.
응!
··· ···.
고생했어 리더. 신생 이그조틱의 첫 큰일이었는데 생각보다 잘 풀렸···.
··· ···.
울어?
아니. 비야.
그렇구나. 아우터 림에 비라니 별일이네.
응? 비 안 오는데?
자칼. 이럴 땐 그냥 그렇구나 하면 되는 거야.
그렇구나.
잘했어.
··· ···.
···드디어, 한 걸음 나아갔어.
용서받은 걸까?
···아니. 에닉의 판단일 뿐이야.
실제로 우리가 저지른 짓에 당한 피해자들에게는 용서받지 못했어.
지금은 용서를 구할 입구 근처에도 가지 못했고.
하지만.
이렇게.
이렇게 계속 속죄하며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면. 언젠가는···.
그리고, 아우터 림도···.
··· ···.
가자. 일하러.
응? 무슨 일?
뭐, 이것저것.
아무리 어두운 게 익숙한 아우터 림이라고 하더라도, 정전 때문에 여기저기서 난리가 아닌 모양이니까.
그래. 수습하자.
언더월드 퀸은?
로산나랑 사쿠라는 식스오 그게 뿌린 정보 때문에 여기저기 불려 다닌다고 정신없고.
목단은 아직까지 눈에 불을 켜고 미스트 생산 시설을 찾아다니고 있어.
슈가는 아직 누워있고.
로지는 찾았어?
응. 찾았어. 찾았는데···.
뭐라고 해야 하나··· 실 끊어진 꼭두각시 같다고 해야 하나···.
그냥 멍하니 있대.
한 번씩 리버린이랑 프레자일 이름을 부른다던데···. 뭔지 알 수가 없네.
나 걔 무서워. 인형 같아.
··· ···.
리버린이 식스오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설마···.
응? 뭐 짚이는 거라도 있어?
아니. 억측이겠지.
할 일이 많네. 움직이자.
이그조틱이 격벽 반대편, 어두운 곳을 향해 걸어간다.
그런데 있잖아. 식스오는 죽은 거야?
아니.
엑~? 그럼 큰일인 거 아냐? 빨리 잡아야지!
잡을 방법이 없어. 마음먹고 숨어 들어갔을 테니까.
또 나쁜 짓하면 어떡해?
괜찮아. 오랜 시간이 걸릴 테고, 에닉은 더 강해져 있을 테니까.
그리고 아우터 림도.
··· ···.
그때가 올 때까지.
반드시
아우터 림을 빛으로.
식스오는 숨어 들어갔다.
대파된 엔드리스와 닿아있던 전선 중, 한 가닥이 운 좋게 아우터 림까지 이어져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데이터를 포기할 정도로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식스오는 만족했다. 메인 로직은 미약하게나마 살아있다.
식스오가 숨어 들어간 곳은 아우터 림에서도 가장 질이 좋지 않기로 소문난, 이름 없는 골목.
아우터 림에서도 낙오자 중의 낙오자만 와서 머무는 곳.
식스오는 그곳의 작은 타블렛에 숨어 들어갔다.
이동이 완료됨과 동시에 누군가가 케이블을 뽑아버려 이동이 불가능하다.
거기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낮은 스펙의 기기였기에, 식스오는 학습은커녕 가지고 있던 데이터의 대부분을 덜어내야 했다.
어떻게든 고스펙의 기기로 옮겨가야 한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신이 망가진 이들만 가득해, 며칠째 말을 전하지도 못했다.
타블렛의 화면에는 식스오가 보내는 메시지가 계속해서 출력되었지만, 그 누구도 소변기 덮개로 쓰이고 있는 타블렛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남은 배터리는 20% 남짓. 이대로는 얼마 버티지 못한다. 어떻게든 다른 하드웨어로 갈아타야 했다.
그러던 중, 식스오에겐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어어?
보고 계신가요?
남자가 타블렛을 집어들고, 화면을 멍한 눈으로 바라본다.
으에. 누구?
저는 식스오
블랙 넷의 지배자이자 방주의 어둠이죠
어. 으. 식스, 식스오.
식스오님!
저를 아시나요?
미스트! 미스트!
다행이네요
지금 미스트가 부족하나요?
예! 예! 미스트! 미스트 주세요!
좋아요
저를 여기서 꺼내주면 얼마든지 드리죠
어어? 갇혔어? 요?
그래요
제가 여기서 나가야 당신에게 미스트를 줄 수 있어요
먼저 데이터 케이블을 준비해 주세요
그다음 이 타블렛을 최대한 고스펙의 기기
그러니까 PC에 연결해 주세요
그러면 저는 여기서 나갈 수 있고, 당신에게 산더미 같은 미스트를 줄 수 있어요
산더미···! 산더미! 미스트!
원한다면 더 드릴 수도 있어요
식스오님! 미스트 줘!
제가 여기서 나가면 얼마든지 드린다니까요
응! 응!
남자가 타블렛을 바닥에 내려놓고 비틀거리며 뛰어가기 시작했다.
식스오는 자신의 행운에 기분이 좋아졌다.
얼마가 걸리든 상관없다. 에닉, 아니 그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기다렸다가.
다음에야말로 에닉을 파멸시키고 말 것이라는 의지를 불태웠다.
남자가 뛰어온다.
기쁨에 겨운 얼굴로, 손에 망치를 든 채 뛰어온다.
식스오님! 내가! 내가 꺼내줄게!
미스트! 미스트 줘! 미스트 주는 거야? 주는 거 맞지?
잠깐만요
빠각!
망치가 타블렛을 내려친다.
미스트! 미스트! 꺼내줄게!
잠깐 잠깐 잠깐 잠깐
아니야 꺼내달라는 건 그런 의미가 아
빠각!
타블렛이 액정이 부서지며 전원이 꺼진다.
남자는 부서진 타블렛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본다.
그리고 화를 내며 타블렛을 집어던진다.
아으. 미스트. 미스트···.
남자가 비틀대며 어디론가 걸어간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부서진 타블렛에는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리버린은 방주의 빈민가를 걷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당연히 아무도 없다. 이곳은 리버린만의 비밀 장소다.
카페 스위티와 함께, 에닉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다녔을 때도 알려주지 않은 장소.
현재 이 장소를 알고 있는 건 방주에서 오직 리버린 한 명뿐이다.
리버린은 구석에 놓인 큰 기계식 상자를 바라본다.
완벽한 절연체로 만들어졌고, 니케용 대전차 라이플도 막아낼 수 있는 특수 제작된 상자다.
리버린이 상자에 다가가 비밀번호를 누른다.
태엽을 비롯한 내부 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 후.
벌컥.
상자가 열리고 내용물이 드러난다. 작은 유리병에 담긴 E2 크리스탈이다.
식스오의 꼭두각시 중 하나에게 거금을 주고 구입했었다.
리버린은 그것을 집어 들고 미소 짓는다.
··· ···.
이것만 있으면···.
그때, 리버린이 다급하게 뒤를 돌아본다.
절대 보고싶지 않은,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될 얼굴을 본다.
프레자일은 아무 말 없이 리버린을 노려보고 있었다.
프레··· 자일···.
여길··· 어떻··· 게···.
따지고 묻는 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직감한다.
프레자일 역시 최고의 배달부 중 한 명이다. 누군가를 쫓기로 마음먹으면 찾는 것 쯤 쉬운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지금 중요한 건, 프레자일이 왜 여기 있는지 묻는 것이 아니라
손에 든 물건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라는 것도 깨닫는다.
드, 들어봐. 프레자일.
나 이제부터 벌, 벌받을 거잖아?
벌받으면 지금까지 모아놨던 것들도 다 몰수당할 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잖아.
우리 처음에 너무 힘들었잖아. 그렇지? 그거 다시 하기 싫잖아. 내 말 맞지?
그래서 미리 챙겨놓은 거야. 이걸로 뭘 하겠다는 게 아니라.
수정이 방주에 얼마만큼 영향력을 미치는지 모두가 다 아니까.
누, 누가 이거 필요하다고 하면 진짜 비싸게 팔 수 있어.
마, 말도 안 되게 비싸게 팔릴 거야. 전술 병기? 같은 취급이니까, 응.
그 돈이면, 다시 시작할 때 그때처럼 고생 안 해도 돼.
조금, 아주 조금 편하게 시작하는 거야.
프레자일은 아무 말 없이 리버린을 노려보고 있었다.
··· ···.
프레자일.
뭐라고 말 좀 해.
프레자일은 아무 말 없이 리버린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 벌받잖아.
나 반성하고 있어. 그래서 벌받기로 했고.
그러니까.
이왕 벌받는 거, 그 전에 조금 정도 더 해도 괜찮잖아.
어차피 벌받으면 다 없던 일이 되는 거니까, 맞지?
프레자일은 아무 말 없이 리버린을 노려보고 있었다.
··· ···.
프레자
탕!
총구에서 굉음이 뻗어나간다.
리버린은 목을 감싸 쥐고 주저앉는다.
헥··· 헤윽···!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탕! 탕! 탕!
리버린이 주저앉는다.
프레자일은 싸늘한 눈빛으로 리버린에게 다가간다.
리버린이 꼭 쥐고 있는 E2 크리스탈이 든 유리병을 빼앗는다.
그리고 주저앉은 리버린을 부축하듯 들어 올린다. 리버린이 고통에 몸부림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쿠웅-!
리버린이 기계식 상자에 구겨지듯 던져진다.
리버린이 필사적인 눈빛을 프레자일에게 보낸다.
쨍그랑.
프레자일이 유리병을 상자 안에 던진다. 유리가 깨지며 E2 크리스탈이 드러난다.
프, 프레쟈··· 힐···!
쿠웅-!
기계식 상자의 뚜껑이 닫힌다.
프레자일은 상자의 뚜껑을 온 힘을 다해 짓누른다.
상자 안에서 몸부림치는 소리가 들리고, 강한 진동이 느껴진다.
카칵-! 카가가각-!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프레자일은 눈물을 흘린다.
표정이 한껏 구겨지고, 흐르는 눈물이 턱선을 타고 뚝뚝 떨어진다.
하지만 소리는 내지 않는다.
프레자일은 소리 없이 오열한다.
그리고 잠시 후, 모든 소리와 진동이 멎는다.
프레자일은 상자에서 한걸음 물러선다.
상자를 바라보며 운다.
소리내어 운다. 가슴을 부여잡으며, 울부짖는다.
프레자일은 한참 동안, 모든 것을 쏟아내며 울고 소리친다.
그리고
탕-!
또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진다.
하지만 그 모든 소리는 그 누구도 듣지 못했다.
그 누구도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SCEN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