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hapter.42: 유일11 / 17
Chapter.42: 유일
기대와 부응
[SCENE START]
허가할 수 없습니다.
아우터 림의 격벽은 개인의 판단으로 열어선 안 됩니다.
여기랑 가장 가까운 격벽이잖아! 그쪽을 통해서 아우터 림으로 피신시킬 거야!
아우터 림에는 전기가 많이 없을 거 아냐! 수정 상대로는 안전지대라고!
아우터 림의 격벽을 무단 개방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전달하겠습니다.
1. 아우터 림에 머물고 있는 이들의 무단 탈
헛소리할 거면 끊어!
뚝-
아니스는 계속 달린다.
확산되는 수정과의 거리는 멀다. 안전하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하지만 수정이 한 방향으로만 확산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아니스는 속도를 올려 광장에 몰려있는 인파와 합류한다.
다들! 어딨어!
아니스! 여기!
무사했구나. 할 일이 있다더니, 그건?
어떻게든 될 것 같아.
아니스. 저길.
아비스타가 가리킨 방향을 본다. 높고 넓은 콘크리트 벽이 광장과 이어진 출구를 막고 있다.
···진짜 쳐놨잖아 미친 것들. 잘도 옮겼네 이걸.
···아마 에닉의 판단이겠죠?
응. 수정이 방주 전역으로 퍼지면 답이 없으니까.
···갇힌 우리들은 버려졌군요.
맞아. 버려졌어.
!!
··· ···.
그래서 우린 버려진 것들이 가는 곳으로 갈 거야.
···?
아비스타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본다.
중앙 광장. 많은 건물이 광장을 둘러싸듯 세워져 있다.
건물들의 불빛은 연신 깜빡거린다.
중앙 광장에서 뻗어나간 넓은 길. 그 길과 이어진 터널.
터널의 입구에는 거리의 분위기를 헤치지 않으려 신경을 썼지만
[주의 : 아우터 림 격벽 인근. 진입 시 안전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라고 쓰여져 있는 표지판이 섬뜩한 느낌을 자아낸다.
아니스. 그건 너무 위험해요.
에닉이 허가해 줄 리가 없어요.
몰라. 나는 가.
여기서 죽고 싶지 않다고.
···뒷일은 생각하지 않으시는 거죠?
어.
알겠어요. 그럼 시민분들을 이끌고 이동···.
카가가가각--!!
젠장! 옆에서도 온다!
중앙 광장을 둘러싼 건물에서 수정이 솟아오른다. 바닥이 들썩인다.
아니스는 크게, 크게 외쳤다.
다들! 날 따라와!
아니스가 달린다.
비명소리, 울부짖는 소리, 공포에 질린 소리, 발소리, 수정이 확장되는 소리가 아니스의 뒤에 따라붙는다.
터널 안으로 들어가자 그 소리는 더욱 도드라졌다.
아니스가 뒤를 돌아본다.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아니스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본다.
옆에 민트와 프리카가 따라붙는다.
별일이 다 있네 정말!
공연 준비 중에 죽은 한 많은 귀신은 되기 싫은데.
아 진짜 최악! 죽어도 되기 싫어!
어차피 안 죽으면 귀신은 못 돼.
내가, 내가 잘못 판단한 거면 어떡하지?
··· ···.
··· ···.
격벽이 안 열리면 어떡하지? 애초에 열 수는 있을까?
아우터 림 안은 안전할까? 가도, 가도 거기 사람들이 우릴 가만히 둘까?
너무 나섰나?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더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냥 가만히 있을걸.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짝.
민트가 아니스의 입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리듯 때린다.
엇.
정신 차려 아니스.
너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밖에 없어. 흔들리지 마.
아, 알겠어! 미안!
앞에. 문이 닫혀.
터널의 끝, 입구가 천천히 닫히고 있다.
터널 안으로 들어오는 빛이 서서히 사그라든다.
뭔데. 진짜야 이거?
···너무한데.
···아.
아니스가 이를 악물고 달린다.
아아!!
닫히기 직전의 문을 향해 뛰어오른다.
이··· 미친···!!
방주 새X들아---!!
꽈앙-!!
아니스의 발차기가 문을 날린다.
터널 밖으로 나온 이들은
그 누구의 입장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우뚝 솟은 회백색의 격벽을 바라보았다.
아니스가 멈추지 않고 달린다.
격벽 앞을 지키고 있는 무인 로봇이 두 기가 아니스를 발견한다.
위압적인 소리로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아니스는 미끄러지듯 앉고, 자세를 잡은 후
런쳐를 갈겨댔다.
폭음과 함께 무인 로봇 두 기가 산산조각 나며 부서진다.
격벽의 꼭대기에서 총기가 아니스를 겨눈다.
아니스는 웅크린 채 달린다. 격벽의 문을 향해 달린다.
쿵-!
아니스의 옆에 고정 포대가 떨어진다.
위를 올려다본다.
자칼이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헤헤! 아니스--!! 헤헤--!!
안녕♡
여! 테러범들! 반갑다!
위쪽 포대는 우리가 어떻게든 할게. 문은 부탁해.
그래!
아니스가 격벽 앞에 멈춰 선다.
거대한 철문이 굳게 닫혀있다.
아니스는 일단 철문을 걷어찼다. 문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 ···.
뒤로 물러서 거리를 벌린다. 뛰어가서 걷어찬다. 문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런쳐를 꺼내 든다. 조준하고 방아쇠에 손을 올린다.
오싹한 느낌이 든다.
아니스는 몸을 날려 자리를 벗어난다.
섬광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격벽이 깔끔하게 도려낸 듯 움푹 파인다.
아니스는 무표정하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이터니티를 바라봤다.
리버린. 그쪽을 잡아.
여, 여기요?
그래. 수동으로 문을 열 거야. 힘껏 당겨야 해.
알겠, 알겠어요.
간다···!
쿠웅-!
E.H.의 뒤에 뭔가가 떨어진다.
착지한 자칼과 바이퍼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E.H.를 바라본다.
···무슨 일이야.
와, 왔어! 왔어! 그게 왔어!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네.
히, 히이···!
엔드리스가 E.H.의 앞에 나타난다.
당신들을 방주에 대한 테러 혐의로 제압하겠습니다.
저항 시 사망할 수 있는 점 유의 부탁드립니다.
이거 열어야 돼. 여기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일 셈이야?
격벽 개방 시 발생할 사태는 미지수입니다.
최악의 경우, 아우터 림의 인원이 방주로 쏟아져 나옵니다.
나오긴 왜 나와! 격벽 너머에 수정이 득실득실대는데!
이전 방주 테러 때를 예시로 들면, 방주에 랩쳐들이 습격했을 때도 일부 인원이 격벽을 넘어갔습니다.
초기 단계에서 랩쳐 및 중앙 정부에 의해 사살되었습니다.
그만큼 아우터 림의 인원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합니다. 저로서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E2 크리스탈의 일부를 소지 후 방주로 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험도가 너무 높다고 판단합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릴···!
아니스는 뒤를 돌아본다.
수많은 이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과 이터니티를 바라보고 있다.
···좋아.
말이 안 통하니, 몸으로 말할 수밖에 없네!
아니스가 이터니티에게 달려든다.
안녕하십니까.
에닉··· 이야···?
그렇습니다.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는군요. 엘리시온 하퍼.
격벽을 열어야 해.
현재 당신은 통칭 펑크 스트리트에 E2 크리스탈을 활성화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순순히 투항 후 인도에 따르십시오.
안 했다고 하면 믿어줄 거야?
사실관계 파악 후 결정할 것입니다.
또 한 당신은, 현재 갱생관에서 탈주 후 해머&드릴 스쿼드 소속 해머링의 머리를 탈취한 리버린과 행동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해당 사항은 당신의 신용도를 급격히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방주의 지배자께서 몸소 말까지 걸어주고, 진짜 심각한 상황이긴 한가 봐?
방주에.
···쟤랑 싸워야 될까?
높은 확률로?
으으···! 쟤 무서운데···.
그렇지? 나도 그래.
격벽을 열거야. 엔드리스와 이터니티를 물러줘. 에닉.
불가능합니다.
···아우터 림이 E2 크리스탈에게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건 너도 알 거야.
왜 그 방법을 염두에 두지 않는 거지?
아우터 림은 방주가 아니므로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 ···.
···너무하네.
··· ···.
그럼 아우터 림은 단순한 방주의 쓰레기통이야?
이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럼 뭐지?
아우터 림에서 사는 것은 그들의 자유 의지로 선택한 것입니다.
스스로 방주의 시민이길 포기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선택지 같은 건 없었어.
원해서, 빛 한 줌 닿지 않는 곳에 살게 된 게 아니야.
저를 설득할 필요는 없습니다.
리더. 언제까지 얘기할 거야? 우리 바쁜 거 아니야?
맞아! 뭔지 모르겠지만 이 문 빨리 열어야 하는 거잖아!
···그래. 맞아.
다들, 준비해. 엔드리스와 싸울 거야.
저, 저도 하나요?
적당한데 숨어있어.
도망가지 말고. 이번엔 절대 그러지 마.
··· ···.
간다.
격벽의 바깥.
아니스는 이터니티에게 엉망으로 당하고 있었다.
아니스의 모든 공격은 파훼 되어 빗나가고,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반면 이터니티는 아무렇게나 팔과 다리를 휘두른다.
조금도 전문적이지 않은 움직임이지만, 단순히 빠르고 강하다.
아니스는 바닥을 뒹굴며 몸을 겨우 일으킨다.
아··· 윽···!
아니스!
오지 마! 방해돼!
···!!
카가가가각--!!
모두가 빠져나온 터널에서 수정이 확장되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터니티의 압도적인 폭력에, 발이 나아가지 않았다.
아니스는 뒤를 돌아본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문··· 열어!
아니스가 달려든다. 이터니티의 공격에 나동그라진다.
열··· 라고···!
해당 사항은 불가능한 요구입니다.
으으아아아--!!
아니스가 다시 달려들고, 이터니티의 공격에 한참을 날아간다.
날아간 아니스가 터널의 벽에 박히듯 내던져진다.
커흑!
부들대며 몸을 일으키는 아니스가 벽을 바라본다.
벌써 수정이 벽을 뚫고 나오고 있었다.
아니스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고, 다시 달려든다.
이터니티의 공격에 당한다. 정신이 아득해지지만 이를 꽉 깨물어 버틴다.
핸드폰을 쥔 손을, 이터니티의 얼굴을 향해 휘두른다.
텁-
이터니티가 아니스의 팔을 잡는다.
아니스의 손에 쥐여진 핸드폰에는 수정이 돋아나고 있었고, 그것을 잡고 있는 손에도 수정이 돋아나고 있었다.
···!
당신의 수는 모두 읽히고 있습니다.
퉷.
아니스가 수정을 뱉어낸다.
수정이 날아가 이터니티의 뺨에 닿는다.
아니스는 수정으로 인해 엉망이 된 입안을 드러내며 웃는다.
카가가가각--!!
이터니티의 몸에서 수정이 삽시간에 돋아난다.
이겼··· 다···.
코어 정지.
이터니티가 축 처진다.
먹이를 잃은 수정이 바스러지며 사라진다.
재가동.
키잉-
손상 부위를 강제 연결.
우득-! 우드드득-!
연결 완료.
··· ···.
아··· 젠장···.
··· ···.
뒤의 인원들은 당신의 지인입니까?
아닌데.
소중한 대상입니까?
몇몇은 그런데, 대부분 처음 보지.
나 싫어하는 녀석들도 몇 있고.
그런데 왜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입니까.
너 인마··· 니케는 사람 지켜야 한다고 네가 그랬잖아.
당신의 지금까지의 행동 패턴과 언행으로 미뤄보았을 때, 해당 사상과 당신은 매칭되지 않습니다.
이 행동은 이해되지 않습니다.
··· ···.
아니스는 뒤를 돌아본다.
시선들을 받는다.
···몰라.
이것저것 준비하더니, 나 갑자기 아이돌로 돌아간 걸지도 모르지.
의미 불명입니다.
아이돌은 말이야.
기대에 부응해야 하거든.
무대에 오르면 있잖아? 아, 물론 무대라고 하기엔 민망한 것들뿐이었지만··· 아무튼.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어.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나를 본단 말이야.
··· ···.
그럼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해!
그 사람들의 기대를 만족시켜 줘야 한다고!
지금도 봐···!
다들 나만 바라보고 있잖아!
뭐라도··· 해야 한다고! 나는!
모른 척할 수 없다고!
··· ···.
이터니티의 손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격벽의 입구에 큰 구멍이 뚫렸다.
아니스는 멍하니 그 구멍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야···.
구멍의 너머, 떠 있는 엔드리스와 그 아래 쓰러진 이그조틱이 보인다.
E.H···?
이터니티. 왜 출입문에 구멍을 냈죠?
이터니티는 아니스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메인터넌스 개시. 해당 행동의 원인 파악 개시.
··· ···.
격벽의 출입문이 강제 개방된 것을 확인.
플랜을 수정합니다.
격벽 너머에 있는 모든 인원을 아우터 림으로 이동시켜 주십시오.
···뭐, 뭐?
이미 일은 벌어졌습니다. 빠르게 플랜을 수정하고 대응해야 합니다.
모든 인원이 아우터 림 내부로 진입 후, 이후 플랜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서둘러주십시오.
이, 이게 진짜 지 멋대로···!
카각···!
···!!
아니스는 입안과 팔에서 이질감과 고통을 느꼈다.
수정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큰일이네.
민트! 프리카! 아비스타!
어? 으, 응!
뭘 도우면 될까?
사람들을 부탁해.
난 저기 볼일이 좀 있어서.
···아니스. 무슨 일이에요?
어··· 그게.
있어. 그런 게.
??
아니스는 격벽의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이대로 몸에서 수정이 확장되면 위험하다.
아우터 림 안에 수정의 식량은 많이 없겠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운 나쁘게 발아래에 전선이 지나가고 있다면?
누군가 전자 제품을 든 채 나를 만지면?
아우터 림은 안전한 곳이 아니게 된다.
아니스는 계속 격벽의 반대편으로 걸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며 출입문 쪽으로 뛰어간다.
···하 참.
이래서 남들 뒤치다꺼리는 질색이야.
얻는 게 없어, 얻는 게. 나만 손해 보고.
··· ···.
아···.
싫다 진짜.
텁.
···뭐야.
이터니티가 아니스의 머리를 붙잡고 있다.
···뭐 한 판 더 하자고? 미안한데 나한테 그런 거 할 시간이···.
이터니티. 위치로 돌아가십시오.
명령 거부 상태 확인. 원인 파악 개시.
뭐, 뭐야. 뭔데 그게. 무섭
후웅-
아니스의 시야가 검어졌다.
[SCEN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