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GODDESS FALL18 / 28
GODDESS FALL
그 어떤 나유타 : B
[SCENE START]
지팡이를 든 승려가 달린다.
정면과 위에서 쏟아지는 붉은 빛을 피하며, 눈앞의 랩쳐에게 지팡이를 휘두른다.
랩쳐의 장갑이 부서지며 드러난 코어에 지팡이를 찔러넣는다.
옆에서 덤벼드는 랩쳐에게로 시선을 돌림과 동시에 지팡이를 휘두른다.
승려의 상반신이 붉은빛에 흔적도 없이 녹는다.
승려의 몸이 푸르게 타오르며 사라지고 금색 입자만을 남긴다.
금색 입자는 바람에 흩날리듯 날아가, 멀리 정좌를 트고 앉은 승려에게 들어간다.
··· ···.
[기억]이 흘러 들어온다.
[그 나유타]는 돌보던 사슴 무리가 있었다.
먹이를 주고, 새끼를 돌보고, 맹수들의 습격에서 보호했다.
갓 태어난 새끼는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 나유타]는 새끼를 정성껏 돌봤다.
새끼 사슴은 [그 나유타]를 어미처럼 따랐다. 어미 사슴은 [그 나유타]를 가족처럼 여겼다.
새끼 사슴이 성장한 모습에 대한 상상, 사슴 무리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상반신이 녹아내릴 때의 고통이 온전히 전해졌다.
나유타는 지형의 정보만을 남기고 그 [기억]을 지운다.
수라처럼 랩쳐의 무리를 헤집으며 승려가 달린다.
이미 전진하는 길에 스물의 랩쳐를 파괴했다. 그 육체는 만물을 부술듯한 기세로 휘둘러졌다.
정면의 붉은 빛에 팔 하나를 잃었지만 승려는 멈추지 않는다.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붉은 빛을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
랩쳐의 다리가 승려를 뭉갠다.
승려의 몸이 푸르게 타오르며 사라지고 금색 입자만을 남긴다.
금색 입자는 바람에 흩날리듯 날아가, 멀리 정좌를 트고 앉은 승려에게 들어간다.
[기억]이 흘러 들어온다.
[그 나유타]는 길잃은 니케와 우연찮게 만나 북부까지 안내하는 역할을 맡은 적이 있었다.
랩쳐 무리의 습격을 받아 길잃은 니케는 목숨을 잃었고, [그 나유타]는 자신에게 힘이 없음을 한탄했다.
수련을 거듭하고 거듭했다.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나유타는 체술에 대한 정보만을 남기고 그 [기억]을 지운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무덤 앞에서 이유 없이 오열했던 [어떤 나유타의 기억].
평생을 랩쳐를 죽이기 위한 증오로 살아왔던 [어떤 나유타의 기억].
밀밭의 허수아비와 친구가 되어, 꼭 돌아오겠다 약속했던 [어떤 나유타의 기억].
해변가에 집을 짓고 하염없이 파도만 보고 살았던 [어떤 나유타의 기억].
그 모든 기억이 나유타에게로 흘러 들어온다.
그리고 나유타는 그 모든 사적인 기억들을 지운다.
나유타는 눈물을 흘린다.
그 어떤 나유타들의 삶의 흔적을 [기억]하며 비탄에 빠진다.
그 어떤 나유타들의 모든 기억을 수용할 수 없는 자신의 작은 그릇에 한탄하며 [기억]을 지운다.
나유타는 눈물을 흘리며, 랩쳐의 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자신과 너무나도 닮은, 하지만 각자의 삶을 살아온
수많은 나유타들이 붉은빛에 사그라드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20분 전.
소인의 분신들을 일제히 돌격시켜, 랩쳐와 싸움과 동시에.
퀸의 자동 요격 무장의 방패가 되겠소.
··· ···.
방패가 되다니 무슨 뜻이지?
설마 자네. 분신들을···.
자동 요격 무장의 총구가 1000개는 넘지 않을 것 아니오.
접근해서, 자동 요격 무장의···.
··· ···.
희생양이 되겠소.
설마 자네, 지금 분신들을 육벽으로 쓰겠다는 이야기인가?
그렇소.
미친 짓이네.
의미 없는 희생이다.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얻을 것이 있소.
자동 요격 무장이 모두 소인의 분신들을 공격하고 있을 때.
우주 정거장을 격파하는 것이외다.
··· ···.
왜. 너무 비인도적이오?
그래.
걱정마시오. 소인의 분신은 소인의 NIMPH를 기반으로 증식해 각자 별도의 경험을 가지고는 있지만.
인격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진 않소이다.
단순히 소인의 모습을 한 기계인형이라 보아도 무방하오.
그러니 그렇게 마음 쓸 필요는 없소.
··· ···.
···좋다.
네 말을 믿겠다, 승려.
··· ···.
고맙소. 요한 소협.
자, 그럼 소인이 분신들을 퀸이 있는 곳으로 돌진시키면 그 뒤를 따라주시오.
기회는 한 번뿐이외다.
그 사이, 자동 요격 무장이 지상의 병력에게 집중되고 있을 때.
우주 정거장을 무력화해 주시오.
우주 정거장이 파괴되면, 우린 우리의 모든 기량을 쏟을 수 있소.
하란.
그래.
너와 내가 아니면 할 수 있는 이가 없겠구나.
현재.
이사벨은 하란과 함께 하늘을 날고 있었다.
곧 스테이션에 접근해.
그래. 모습이 보이는구나.
···쉽지 않겠는걸.
그래도 해낼 수 있지?
물론이란다.
이사벨이 속도를 높인다.
스테이션의 모습이 점점 가까워진다.
가까이 갈수록 그 위용이 더욱 짙어진다.
그리고 거리가 더욱 가까워졌을 때.
아래를 보고 있던 수많은 붉은 코어 중 일부가 이사벨과 하란을 바라보았다.
들켰구나.
이 정도 거리라면 뚫을 수 있어.
꽉 잡아.
그래. 가보자꾸나.
[SCEN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