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루드밀라 : 윈터 오너04 / 05
루드밀라 : 윈터 오너
니케, 루드밀라
[SCENE START]
고귀한 로열. 루드밀라.
로열의 자랑이자. 로열의 자존심.
과거의 이 몸은.
타인의 희생 위에 살던 가문의 진실을 알게 되자.
자신의 삶이 기생충처럼 느껴져 인간이기를 포기할 만큼.
신념과 열정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이 몸은 몰랐을 거다.
그렇게 자부심을 가졌던 로열을 버린 대가가.
부치지 못한 편지 한 통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 버렸던 로열이. 가문이.
그들은 비겁하다 비난했던 이 몸의 분노가.
중요한 건 아니었단 것을.
멍청한 루드밀라.
멍청한 니케 루드밀라.
··· ···.
루드밀라는 한동안 말없이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런 루드밀라의 얼굴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깊은 그림자가.
루드밀라가 입을 연 건, 찻잔을 반쯤 비웠을 때다.
···먼 옛날의 일이다.
이 몸이 니케가 되기 전,
인간일 때의 일이지.
한 번쯤 들어봤을지도 모르겠구나.
로열이란 스스로 고귀함을 증명하는 자라는 말을.
선택지
···그래.
어려서부터 이 몸은 그렇게 배워왔다.
그래서일 거다.
우리 가문이 고아원 후원 사업을 한다고 들었을 때,
자부심을 느낀 건.
우리 가문은 고귀하다.
우리 가문이야말로 로열의 자랑이자, 로열의 자존심이다.
그러니 그에 어울리는 로열이 되겠다고 다짐했지.
선택지
펜을 들었다.
고아원에서 지내는 아이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편지를 썼고.
후원금과 함께 고아원에 전달했다.
그날부터 이 몸은 답변을 기다렸다.
이 몸이야말로 고귀한 로열이라고.
선의를 베풀어줘서 감사하다고.
그런 답변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부끄럽게도, 말이지.
그때를 회상하듯 루드밀라는 눈을 감았다.
물론 답변은 오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루드밀라의 입가엔 쓸쓸함이 번져 갔다.
편지와 후원금을 보내고, 일 년쯤 지났을 때인가?
가문이 소란스럽더군.
이유인즉슨, 고아원에서 학대로 인한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는 거였지.
선택지
가문의 조치는 단순했다.
그동안 이어왔던 후원을 끊어버렸지.
고아원에서 지내던 아이들이 어떻게 될진 상관없었던 거야.
더는 가문의 고귀함을 빛낼 수 없게 되었으니.
··· ···.
그날 깨달았다.
우리 가문 역시, 누군가의 희생으로 고귀함을 증명하는 기생충에 불과하다고.
하염없이 답장을 기다린 이 몸 또한 그런 기생충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고.
그 후로는 그대가 아는 대로다.
갓데스라는 최초의 니케를 알게 된 뒤.
자부심을 가졌던 로열을 버리고,
니케, 루드밀라로서 북부를 지키게 되었지.
다시 눈을 뜬 루드밀라가 편지를 건넸다.
[수신인 : 천사 고아원 일동]
니케가 된 후, 다시 한번 펜을 들었다.
이 몸이 느낀 우월감을, 자부심을···.
그들에게 사죄함으로써 떨쳐내고 싶었다.
허나,
재정 상태가 좋지 않던 고아원은 이미 없어졌더군.
그렇게 갈 곳 잃은 편지만이 남은 거다.
분명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을 텐데···.
진정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될 방법을 생각하지 않고,
자존감 지키기에 급급했던 결과.
때를 놓친 거지.
손때가 타 누렇게 변한 편지를 펼치자,
여러 번 고쳐 썼는지 닳고 닳은 문장이 보였다.
그 편지를 볼 때마다 생각하곤 한다.
과연 이 몸은,
니케 루드밀라는,
스스로 고귀함을 증명하고 있는지.
여전히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고귀함을 증명하려는 건 아닌지 말이다.
선택지
그런데 이렇게 조용한 설온장을 보니,
또다시 실수를 반복한 것 같구나.
완벽하게 설온장을 관리하는 것으로,
미카와 벨로타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하려 했건만.
둘이 진정으로 바라는 걸 놓치고 있었군.
후후, 그야말로 자기만족 아닌가.
··· ···.
···완전히 실수했어.
선택지
선택지
선택지
선택지
내가 건넨 편지를 바라보는 루드밀라의 눈이 살짝 커졌다.
···고맙구나.
선택지
후후, 그래.
역시 그대는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구나.
아마 이 편지를 본 순간부터 알고 있었겠지.
··· ···.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루드밀라는 말했다.
이 몸과 조금만 더 어울려주겠느냐?
[SCENE END]